그에 반해 독일은 적극적으로 시장을 보호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일은 여전히 국유화와 배급제에 따른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를 타파한 사람이 바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였다. 에르하르트는 경제정책의 책임자 자리에 오르자마자 물가 통제와 배급제를 폐기해버렸다. 가격의 자유화를 통해 시장의 자율성을 되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독일 경제가 서서히 풀리면서, 암시장 대신 가게 진열장에 상품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_23p
하이에크와 케인스는 각각 신자유주의와 수정자본주의라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세기의 대결로 꼽히는 논쟁을 벌엿다. 처음에는 논쟁의 승리자가 케인스인 듯 보였다. 적어도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경제가 흔들리며 실업률이 늘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자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에 적색경보가 켜졌다. _47p
기업이 매순간 겪어야 하는 경쟁도 어미사자의 시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만이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독점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기업 생태계를 더욱더 건강하고 발전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때 정부의 역할은 독점자의 횡포를 막는 것이다. 정당한 경쟁을 통해 자연독점을 이룬 기업이라 할지라도 지위를 나쁘게 활용해 다른 기업의 시장진입을 방해하거나 독점적 지위를 악용할 경우에는 정부 제재가 필요하다._62p
수도사업 민영화는 생산성 향상과 이익 증가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수도망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에 가장 덕을 본 것은 이미 수도망을 활용하고 있던 부유층이 아니라, 투자 덕분에 새로 수도망이 연결된 저소득층이었다. 물론 민영화 초기에는 물값이 상당히 올라갔다. 정부보조금에 의존하여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던 수도요금 규제가 풀린 탓이다. 하지만 이후에 따라온 합리적은 경영과 생산성 향상, 외부 투자로 규모의 경제에 이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물값이 하락했다. 민영화 초기에 물값이 정상화되는 것을 조금만 견디면 더 많은 이득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_87p
금융위기 직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적완화정책은 급격한 경기 위축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오래 지속된다면 물가를 지나치게 상승시키거나 이른바 ‘거품경제’를 만들 우려가 있다. 주가와 부동산이 실물가치 이상으로 고평가되고 거품이 끼면서 경기가 억지로 부풀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거품경제도 더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키고 경기가 장기간 침체되고 하락하는 데 양적완화정책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거품이 사라지는 순간, 양적완화정책으로 간신히 떠받치고 있던 경제는 단박에 무너져 내리게 된다. _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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